정보는 넘치는데, 감정은 사라졌다: 중년의 디지털 과잉

뉴스는 매일 쏟아지고, SNS 피드는 멈추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켜기만 하면 세상은 내 손안에 있다. 정보는 넘치고, 영상은 끊임없이 재생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면서도 나는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50대에 접어든 지금, 나는 과연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는 걸까? 이 글은 하루 5~6시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중년의 삶 속에서 정보 과잉이 감정 소진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분석하고, 디지털 디톡스를 통해 감정의 회복 가능성을 다시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스마트폰이 내 감정을 둔하게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바빴다고 생각했다.
회사 일, 가사, 가족 돌봄, 건강 문제까지 챙기다 보면 하루가 짧았다.
그런데 어느 날, 뉴스에서 슬픈 기사를 읽고도 별 감정이 들지 않았고,
아이의 웃음에 웃음이 나오지 않는 나 자신을 보고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하루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 아침에 일어나면서 뉴스 앱으로 기사 훑기
• 출근길에 유튜브 영상 2개 시청
• 점심 후 SNS 피드 스크롤
• 업무 중에도 틈틈이 커뮤니티 글 확인
• 퇴근 후 소파에 앉아 2시간 영상 소비
• 자기 전에는 짧은 영상 몰아보기

이 모든 순간을 합치면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6시간을 넘었다.

나는 내 하루 대부분을 ‘정보를 보는 일’에 쏟고 있었고,
정작 내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거의 없었다.

 

정보는 뇌를 채우지만, 감정은 메말라간다

우리 뇌는 본래 한 번에 하나의 감정, 하나의 자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라는 도구는 동시에 수십 개의 뉴스, 댓글, 영상, 알림을 한꺼번에 우리에게 밀어 넣는다.

이처럼 빠르고 반복적인 자극은 뇌의 감정 회로(편도체, 해마)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면서도,
정작 감정을 깊이 느낄 시간과 여유는 빼앗아버린다.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변화는 다음과 같다:

• 감정 표현이 줄어든다
• 감동이나 공감이 잘 안 된다
• 웃어야 할 때 웃음이 잘 안 나온다
• 혼자 있는 시간이 불안하고 허전하다
• 대화보다 화면이 편하게 느껴진다

이 상태가 반복되면 뇌는 ‘깊은 감정’을 피곤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고,
점점 더 즉각적이고 가벼운 자극만을 추구하게 된다.

즉, 정보는 계속 쌓이지만
감정은 점점 흐르지 않는 상태, ‘감정의 무감각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감정이 둔해지는 이유는 ‘지속적인 과잉 자극’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할수록 감정이 무뎌지는 이유는 단순히 ‘바빠서’가 아니다.
뇌는 자극을 계속해서 받을수록, 그 자극에 적응하고 반응이 줄어들게 되는 성질이 있다.
이것을 ‘자극 둔감화(Habituation)’라고 한다.

쉽게 말해, 처음엔 충격적이고 감동적이었던 뉴스도, 슬픈 영상도
반복적으로 보고 듣다 보면 뇌가 “이건 특별한 게 아니다”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감정 회로의 반응 자체가 낮아지고,
우리는 더 이상 작은 일에 웃거나 울지 못하는 상태에 익숙해진다.

또한 스마트폰 속 콘텐츠는 대부분 빠르게 소비되고, 깊이 없는 정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얕은 정보의 반복은 감정을 자극하지만, 그 감정을 ‘소화’할 시간은 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느낀 줄은 알지만, 느낀 감정이 남지 않는” 이상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감정 회복을 위한 디지털 감각 리셋 시도

나는 이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감정을 되찾기 위해 디지털 감각 리셋을 시도하기로 했다.

핵심은 ‘디지털 금지’가 아니라, 감정을 느낄 여유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루틴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1) 아침 1시간 스마트폰 금지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창문을 열고 환기시키고,
스트레칭과 손글씨 일기를 썼다.
정보가 아닌 나의 감정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2) 하루 한 번, 대화 중 스마트폰 내려놓기

가족과 식사할 때, 동료와 커피 마실 때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았다.
상대방의 표정, 말투, 목소리 톤이 더 크게 들어왔다.

3) 20분 산책 & 자연 관찰 루틴

귀에 이어폰 없이, 폰 없이 걷는 산책을 매일 실천했다.
바람 소리, 나뭇잎 움직임, 하늘의 구름에 집중하면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이 분명히 있었다.

4) 감정 일기 쓰기

오늘 하루 중 가장 기분 좋았던 순간,
짜증 났던 이유,
웃었던 장면 등을 짧게 메모했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느끼고 있구나’라는 자각이 생겼다.

이 단순한 실천들을 일주일간 반복하자,
서서히 작은 일에도 감정 반응이 생기고, 인간관계가 부드러워졌으며,
무엇보다 ‘삶이 선명해지는 느낌’을 다시 찾게 되었다.

 

감정은 ‘디지털 바깥’에서 깨어난다

감정은 멀리 있지 않았다.
스마트폰 화면 바깥,
눈을 마주치고 말을 건네는 순간,
햇살을 얼굴에 받는 산책길에서,
따뜻한 밥 한 숟갈에
조용히 다시 깨어났다.

중년의 삶에서 감정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다.
삶의 의미를 결정짓는 방향감각이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감정적 기반이다.

정보는 더 많이 알게 해 주지만,
감정은 더 깊이 살게 해 준다.
그리고 그 감정을 다시 느끼기 위해 필요한 것은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단 30분이면 충분했다.

 

결론

우리는 정보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도,
감정을 잃으면 삶의 온도는 차가워진다.

50대의 나는, 이제야 알게 됐다.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많은 감정’을 느끼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오늘 하루,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자.
혹시 그 안에, 오랫동안 잊고 지낸 감정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